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이즈미 준이치로 (문단 편집) ==== 주변국들과의 마찰과 [[고이즈미 담화]] ==== [[파일:external/image.pressian.com/40060815112550.jpg]]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국립 추도시설로 쓰는 방안을 구상하기도 했던 고이즈미였지만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를 참배하였다. 이에 대해 고이즈미는 2001년 8월 13일 첫번째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내가 신사에 구애를 받거나 집착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수상 고이즈미 준이치로라는 자가 온 정성을 다해 신사에 참배를 했을 뿐이다. [[대한민국|주]][[중국|변]]나라들의 반발과 입장도 고려해서 부득이 오늘(2001년 8월 13일) 참배한 것이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즉, 그래도 주변국 신경 써서 [[8월 15일]]에 안 했다는 소리. [[중국]]은 여기에 대단히 화가 났는지 2차 참배 이후로 고이즈미의 방중을 거부하기도 했다.[* 의외일수도 있겠지만 이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했던 것이 [[2007년]] 1차 임기를 보내고 있던 [[아베 신조]]였다. 이후 총리가 한국, 중국과의 외교관계 악화를 우려해 직접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걸 자제하는 것이 자민당-민주당 정권을 가리지 않고 유지되다가 [[2013년]] 2차 임기를 맞이한 아베가 직접 이 관례를 깨고 다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논란과 관련해서도 한국의 재수정 요구에 '일본 역사교과서는 별 문제가 없다'는 부정적 입장을 밝히는 한편, [[자위대]]의 집단 자위권 용인 등 보수 우경화 정책을 시도하기도 했다. 덕분에 일본 우익층에선 호감을 샀지만, 반대로 일본내 양심 세력이나 주변국들에겐 제대로 어그로를 끌었다. 일본내에선 그래도 소장파 소리 듣던 고이즈미에 대한 환상이 깨지던 순간. 이에 대해 자민당 내부의 강경우익을 비롯한 고이즈미 반발 세력 약화와 선거에서의 보수층 결집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는 약간 다른 방법을 택한 것에 가까웠던 것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패전 60주년이었던 [[2005년]] [[8월 15일]], 고이즈미는 기존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답습, 계승하는 '''[[고이즈미 담화]]'''를 발표했다.[* [[경술국치]] 후 100년 만에 나온 [[간 나오토]]의 [[간 담화]]가 가장 진보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만, 사실 고이즈미가 무라야마 담화를 후퇴시키지 않고 계승한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10년 뒤 2015년에 나온 '[[아베 담화]]'의 후퇴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 일본국은 일찍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행위로 인해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국민들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 들여 재차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의 뜻을 표명함과 동시에 지나간 전쟁으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에게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2FQI&articleno=2342283&categoryId=505®dt=20050816165016|담화 전문]] 그리고 앞선 그해 정월에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미루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81&aid=0000027466|내각내 반대]] 탓도 있었고, 여론도 좋지 않았으며, [[고노 요헤이]] 중의원 의장 등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0&aid=0000302447|반대]]했기 때문. 그렇게 2005년엔 안가는가...했는데, 결국 2달 만인 [[10월 17일]] 개인 자격으로 신사참배를 강행하였다. 우정 해산 이후 승리에 따른 자신감으로 풀이되었다. 덕분에 같은 해 12월에는 국제무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관련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3/22/htm_20170322163722576403.jpg|#회담]] [[파일:htm_20170322163722576403.jpg]] > "([[제2차 세계 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경우) 국가의 이름으로 전쟁에 나가 이웃에 고통을 준 사람들에 대해 일체의 추모시설을 만들지 않았다. 독일은 [[오데르-나이세 선|일부 영토]]까지 포기할 정도로 역사인식을 철저히 청산했다. (역대 공동체 발전은) 과거 질서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 기초해야 한다." > "한 명의 국민, 총리로서 자국 시설에서 평화를 빌고 전몰자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을 비판하는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다. 전쟁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 2005년 12월 14일, 대통령 [[노무현]] - 총리 고이즈미 설전 내용. 아예 임기 마지막 해인 2006년에는 쐐기를 박았다. > 일국의 수상이 내 나라에 있는 신성한 [[신사(신토)|신사]]에서 수상 명의로 참배하는 것이 뭐가 그리 거슬리거나 잘못되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고로 반대 세력들이 제발 좀 내정간섭이나 신사참배 가지고 뭐라고 안 했으면 좋겠다. > - [[2006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 이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